사회적 기술은 성격이 아니라 익힐 수 있는 결입니다
「저 사람은 원래 사람을 잘 다뤄」, 「나는 원래 낯을 가려서」 — 사회적 기술을 이야기할 때 우리는 자주 「원래」라는 결로 그 자리를 닫아 두곤 합니다. 마치 사회적 기술은 타고난 성격의 결이고, 가지고 태어난 사람은 평생 가지고 살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평생 그렇지 않은 결로 살아가는 것처럼요. 그러나 사회적 기술의 결을 가까이서 들여다보면, 그 결은 성격의 결보다 훨씬 더 「익힐 수 있는 결」에 가깝다는 풍경이 보입니다. 이 글은 사회적 기술을 자기성찰의 자리에서 정직하게 들여다봅니다 — 「누구나 노력하면 사교적인 사람이 된다」 같은 단정도, 「타고난 결은 바뀌지 않는다」 같은 단정도 아닌, 그 사이의 결을 부르는 자리입니다.
「사회적 기술」이라는 결의 이름
사회적 기술(social skills)이라는 단어는 사실 매우 넓은 결을 한꺼번에 부르는 이름입니다. 첫인사를 부드럽게 건네는 결, 대화의 차례를 맞추는 결, 상대의 결을 읽는 결, 의견이 다를 때 부드럽게 자기 결을 부르는 결, 어색한 결을 부드럽게 다듬는 결 — 이 모든 결을 한 단어로 묶어 둔 자리입니다.
골먼(Goleman, 1995)이 정리한 EQ의 다섯 결 중 하나도 사회적 기술입니다. 그는 사회적 기술을 「관계 안에서 결을 잘 다루는 결」이라고 부르며, 자기인식·자기조절·동기·공감의 결이 모여서 마지막에 자리잡는 결이라고 보았습니다. 사회적 기술이 「말 잘하는 결」이나 「외향적인 결」과 같지 않다는 점이 여기서 중요합니다. 자기 결을 알아보고, 다른 사람의 결을 알아보고, 그 사이를 부드럽게 잇는 결이 사회적 기술의 본래 자리입니다.
이 결을 「성격」으로 부르는 자리는 자주 외향성(extraversion)의 결과 사회적 기술의 결을 섞어 부르는 데서 옵니다. 그러나 외향성은 「자극을 추구하는 결」, 「많은 사람과 함께 있을 때 결이 채워지는 결」에 가깝고, 사회적 기술은 「관계의 결을 부드럽게 다루는 결」에 가깝습니다. 두 결은 자주 겹치지만 같은 결은 아닙니다. 조용한 결의 사람이 사회적 기술의 결이 깊은 자리는 일상에 흔합니다.
성격과 기술 — 두 결의 차이를 부르는 자리
성격의 결과 기술의 결을 구분하는 자세는 사회적 기술을 들여다볼 때 가장 먼저 부르고 싶은 결입니다.
| 결의 갈래 | 성격의 결 | 기술의 결 |
|---|---|---|
| 변화의 결 | 비교적 안정적 | 연습으로 다듬어지는 결 |
| 작동의 결 | 「내가 어떤 사람인가」 | 「내가 무엇을 할 줄 아는가」 |
| 평가의 결 | 좋고 나쁨이 없는 결 | 상황에 맞는지로 부르는 결 |
| 대표 예 | 외향성, 친화성 | 경청, 차례 맞추기 |
| 결의 흐름 | 평생에 걸쳐 천천히 | 의도적인 연습으로 비교적 빨리 |
이 표는 「성격은 변하지 않고 기술은 변한다」는 단정의 결이 아닙니다. 성격 심리학에서도 성격의 결이 평생 고정되어 있다고 보지는 않습니다. 다만 두 결이 움직이는 결의 시간 단위와 결의 방식이 다르다는 풍경입니다. 성격의 결은 인생의 큰 결과 함께 천천히 움직이고, 기술의 결은 의도적인 연습의 결을 통해 비교적 짧은 결 안에서 다듬어집니다.
이 차이를 부르는 자세 자체가 자기성찰의 한 결입니다. 「나는 원래 사람을 잘 못 다뤄」라는 결을 「나는 아직 그 결을 익히지 않았다」로 다시 부를 수 있다면, 그 결의 풍경은 매우 다르게 자리잡습니다.
사회적 기술의 결을 이루는 작은 결들
사회적 기술이라는 큰 결은 사실 여러 작은 결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큰 결을 한꺼번에 다루기는 어렵지만, 작은 결 하나하나는 의외로 다가가기 좋은 자리에 있습니다.
첫 번째 작은 결은 「듣는 결」입니다. 사회적 기술이 좋은 사람을 자주 「말을 잘하는 사람」으로 부르지만, 가까이 들여다보면 그들의 결은 오히려 「듣는 결」에 가깝습니다. 상대의 말을 끝까지 듣는 결, 상대의 결을 읽으며 다음 결을 부르는 결, 상대가 부르고 싶은 결을 부드럽게 끌어 주는 결 — 이 결들은 모두 「듣는 결」 안에 자리잡습니다.
두 번째 작은 결은 「차례를 맞추는 결」입니다. 대화는 음악의 결과 닮아 있어서, 차례의 결이 맞지 않으면 결이 어색하게 자리잡습니다. 상대의 말이 끝나기 전에 결을 끊는 자세, 자기 결만 길게 부르는 자세, 상대에게 결을 돌리지 않는 자세 — 이 결들은 모두 차례의 결이 어긋난 자리입니다. 이 결은 의식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는 결이고, 들여다보는 자세 자체가 결을 다듬어 줍니다.
세 번째 작은 결은 「결을 읽는 결」입니다. 상대의 표정의 결, 목소리의 결, 자세의 결을 읽는 결입니다. 이 결은 비언어 신호(nonverbal cue)의 결을 부르는 자리이기도 합니다. 자주 보고된 연구는, 사람들이 평균적으로 비언어 신호의 결을 생각보다 정확하게 읽는다는 결과 함께, 동시에 자기 결의 영향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결도 보고합니다. 자기 결이 흔들릴 때 상대의 결을 잘못 읽기 쉽다는 풍경입니다.
네 번째 작은 결은 「자기 결을 부드럽게 부르는 결」입니다. 의견이 다를 때, 부탁을 거절할 때, 부담스러운 결을 부를 때 — 자기 결을 부르되 상대를 깎지 않는 자리가 사회적 기술의 가장 어려운 결 중 하나입니다. 흔히 「자기주장 훈련(assertiveness training)」이라는 이름으로 부르는 자리이기도 합니다.
다섯 번째 작은 결은 「어색함을 다듬는 결」입니다. 모든 만남이 매끄럽지는 않습니다. 어색한 침묵의 결, 잘못 부른 결, 농담이 비껴간 결 — 이런 결을 부드럽게 다시 부르는 자세가 사회적 기술의 한 결입니다. 이 결은 의외로 「완벽하게 부드러운 결」이 아니라 「어긋난 결을 부드럽게 받아들이는 결」에서 자리잡습니다.
「연습으로 다듬어지는 결」이라는 풍경
사회적 기술의 결이 연습으로 다듬어진다는 결은 어떻게 보고되어 왔을까요. 이 결을 정직하게 부를 때 가장 가까운 자리는 「의도적인 연습(deliberate practice)」의 결입니다.
심리학자 안데르스 에릭손(Anders Ericsson)이 정리한 의도적 연습의 결은 운동, 음악, 체스 같은 자리에서 자주 인용됩니다. 핵심은 「반복」 자체가 아니라, 「자기 결의 어긋남을 알아채고 한 결씩 다듬는 자세」입니다. 사회적 기술의 결도 비슷한 결로 다듬어지는 풍경이 자주 관찰됩니다. 같은 모임에 매주 나가는 결만으로는 결이 잘 다듬어지지 않지만, 「오늘은 한 사람의 말에 끝까지 결을 맞춰 보겠다」 같은 작은 결을 정해 두고 자기 결을 들여다보는 자세는 결을 부드럽게 바꿉니다.
다만 「사회적 기술을 연습으로 익힐 수 있다」는 결을 「누구나 사교의 달인이 될 수 있다」 같은 결로 미끄러뜨리지 않는 자세가 정직합니다. 신경다양성의 결을 가진 분, 사회 불안의 결이 깊은 분, 깊은 외상의 결이 자리잡은 분에게 같은 결의 연습이 같은 결로 작동하지 않습니다. 「익힐 수 있는 결」이라는 자리는 「누구에게나 같은 속도로 익혀진다」는 결이 아니라, 「성격으로 닫혀 있는 결이 아니다」 정도의 정직한 결입니다.
학계 안에서도 사회적 기술 훈련(social skills training)의 효과의 결은 조건과 대상에 따라 다르게 보고됩니다. 어떤 자리에서는 분명한 결이 보고되고, 어떤 자리에서는 결의 차이가 작게 보고되기도 합니다. 「확실히 효과가 있다」 같은 단정보다, 「특정 결의 자리에서는 도움이 된다는 결이 보고되고 있다」 정도가 더 정직한 결입니다.
한국 사회의 결 안에서 본 사회적 기술
한국 사회의 결 안에서 사회적 기술의 자리는 의외로 복잡합니다. 「사회생활 잘하는 결」, 「눈치 있는 결」, 「분위기 맞추는 결」 — 한국어 안에는 사회적 기술의 결을 부르는 결이 매우 풍부하게 자리잡고 있습니다. 동시에 그 결의 일부는 「자기 결을 죽이는 결」과 가까이 있어, 사회적 기술의 결과 자기소외의 결이 섞여 부르기 쉬운 자리이기도 합니다.
특히 위계의 결이 분명한 자리에서는 「상대의 결을 읽는 결」이 「상대의 결에 맞추는 결」로 좁혀지기 쉽습니다. 회의에서 다른 의견을 부르는 결, 윗사람에게 거절의 결을 부르는 결, 친한 사이에서 부탁을 정중히 미루는 결 — 이런 결들이 「버릇없는 결」로 부르게 되는 풍경 안에서 사회적 기술의 결은 한쪽으로 좁아집니다.
이 결을 부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한국 사회의 결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의 결은 그 결과 함께 가는 결이 자연스럽습니다. 다만 「상대에게 맞추는 결」과 「자기 결을 부드럽게 부르는 결」이 서로를 깎지 않고 함께 갈 수 있다는 자리를 한 번 부르는 자세가 자기성찰의 한 결입니다. 사회적 기술이 「자기 결을 지우는 결」이 아니라 「자기 결과 상대 결 사이를 잇는 결」이라는 한 줄을 자기 안에 자리잡게 두는 결입니다.
흔한 오해 — 「내성적인 사람은 사회적 기술이 없다」
사회적 기술과 외향성의 결을 섞어 부르는 자리는 일상에 매우 흔합니다. 그러나 두 결을 가까이서 들여다보면, 내성적인 결의 사람이 사회적 기술의 결이 깊은 자리는 의외로 자주 보입니다.
내성적인 결의 사람은 자극이 많은 자리에서 결이 빨리 마르기 때문에, 작은 모임의 결, 한두 사람과의 깊은 결을 더 자주 선호합니다. 이 결의 풍경 안에서 그들은 「듣는 결」, 「결을 읽는 결」, 「깊이 부르는 결」을 자연스럽게 다듬게 됩니다. 외향적인 결의 사람이 「많은 사람의 결을 부드럽게 부르는 결」에 능하다면, 내성적인 결의 사람은 「적은 수의 결을 깊이 부르는 결」에 능한 자리가 자주 관찰됩니다.
「사회적 기술을 익힌다」는 결이 「외향적인 사람으로 변한다」는 결과 같지 않다는 점이 여기서 중요합니다. 자기 결의 본래 풍경을 부정하고 다른 결의 사람으로 변하라는 자리는 사회적 기술의 본래 결과 잘 맞지 않습니다. 자기 결의 풍경 안에서 다듬어 갈 수 있는 결을 한 결씩 부르는 자세가 더 정직한 결입니다.
또 한 가지 흔한 오해는 「사회적 기술이 좋은 사람은 모두에게 사랑받는다」는 결입니다. 사회적 기술의 결은 「모두에게 사랑받는 결」이 아니라 「관계의 결을 부드럽게 다루는 결」에 가깝습니다. 자기 결을 부드럽게 부르고 자기와 맞지 않는 결과 부드럽게 거리를 두는 결도 사회적 기술의 한 결입니다.
Brambin EQ에서 자기 결의 다섯 차원을 한 번 들여다보세요 — 점수의 한 줄이 아니라, 결의 다섯 모양 중 사회적 기술의 결이 일상의 어떤 자리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부르는 거울로 사용해 보세요.
일상에서 결을 다듬는 작은 자리
사회적 기술의 결을 일상에서 다듬는 자세를 몇 가지 자리에서 떠올려 봅니다. 「하루에 새 사람 한 명과 대화하기」 같은 큰 결보다, 결을 한 결씩 작게 부르는 자세가 더 자연스럽게 자리잡습니다.
첫 번째 자리 — 「오늘은 한 번 더 듣겠다」는 결. 평소 자기 결을 빨리 부르는 자세가 강한 사람이라면, 한 번의 대화에서 「상대의 결을 한 호흡 더 들어 보겠다」는 작은 결을 정해 두는 자세가 결을 부드럽게 바꿉니다. 큰 변화가 아니라 한 호흡의 결입니다.
두 번째 자리 — 「감사의 결을 한 마디 더 부르겠다」는 결. 일상의 결 안에서 「고맙다」, 「덕분이다」, 「도와줘서 좋았다」 같은 결을 한 마디 더 부르는 자세는 관계의 결을 부드럽게 다듬어 줍니다. 빈말의 결과는 다른 자리에 있는 결입니다.
세 번째 자리 — 「자기 결을 부드럽게 부르겠다」는 결. 동의하지 않는 의견에 대해 「제 결은 조금 다른 것 같습니다」 같은 결을 한 번 부르는 자세는 자기 결을 깎지 않으면서 상대를 깎지 않는 결을 다듬어 줍니다. 처음에는 어색해도 결의 결이 익숙해지면 부드럽게 자리잡습니다.
네 번째 자리 — 「어색함을 부드럽게 부르겠다」는 결. 어색한 침묵이 자리잡았을 때 「오늘 결이 좀 어색하네요」 같은 결을 한 번 부르는 자세는, 어색함을 없애려는 자세보다 어색함과 함께 가는 결의 자리에 가깝습니다. 사회적 기술의 결의 한 풍경은 「완벽하게 부드러운 결」이 아니라 「어긋난 결을 부드럽게 받아들이는 결」입니다.
다섯 번째 자리 — 「결을 돌려주는 결」. 자기 결을 부른 뒤에 「당신은 어떤가요」라는 결을 한 번 돌려주는 자세는 대화의 차례를 맞추는 결의 한 결입니다. 의외로 자주 잊히는 결이지만, 한 번의 호흡으로 결의 풍경을 매우 다르게 만듭니다.
자주 묻는 질문
사회적 기술은 정말 누구나 익힐 수 있나요?
「누구나 같은 속도로 익힐 수 있다」고 부르기는 어렵습니다. 신경다양성의 결, 사회 불안의 결, 깊은 외상의 결이 자리잡은 자리에서는 같은 결의 연습이 같은 결로 작동하지 않습니다. 다만 사회적 기술이 「성격으로 닫혀 있는 결」이 아니라 「의도적인 연습으로 다듬어지는 결」이라는 점은 비교적 정직하게 부를 수 있는 결입니다. 자기 결의 풍경 안에서 한 결씩 부르는 자세가 출발점입니다.
내성적인 사람은 사회적 기술의 결이 약한가요?
내성적인 결과 사회적 기술의 결은 같은 결이 아닙니다. 내성적인 결의 사람은 작은 모임의 결, 한두 사람과의 깊은 결을 더 자주 선호하고, 그 안에서 「듣는 결」, 「결을 읽는 결」, 「깊이 부르는 결」이 자연스럽게 다듬어지는 풍경이 자주 관찰됩니다. 사회적 기술의 결은 「많은 사람의 결을 부드럽게 부르는 결」만이 아니라 「관계의 결을 부드럽게 다루는 결」 전반을 가리킵니다.
사회적 기술을 다루는 책을 읽으면 결이 다듬어지나요?
책의 결은 결의 풍경을 부르는 데 도움이 되지만, 사회적 기술의 결은 결국 「결의 자리에서 자기 결을 들여다보는 결」을 통해 다듬어집니다. 책을 읽고 「오늘은 한 결을 한 번 시도해 보겠다」 같은 작은 결을 정해 두는 자세, 그리고 그 결을 자기성찰의 결로 들여다보는 자세가 함께 갈 때 결이 부드럽게 자리잡습니다. 이론의 결과 일상의 결 사이의 거리를 좁히는 자세가 핵심입니다.
「자기주장의 결」을 부르면 사람들이 싫어하지 않을까요?
자기주장의 결을 부르는 자세는 「자기 결만 부르는 결」과 다릅니다. 상대의 결을 인정한 뒤 자기 결을 부드럽게 부르는 결, 거절의 결을 부를 때 상대의 결을 깎지 않는 결, 자기 결의 한계를 정직하게 부르는 결 — 이 결들은 단기적으로 어색할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관계의 결을 더 정직하게 만들어 주는 자리에 가깝습니다. 자기 결을 지우는 자세가 결국 관계의 결도 마르게 한다는 풍경이 함께 자리잡습니다.
사회적 기술 자가진단의 결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요?
자가진단의 결은 결의 풍경을 보여 주는 한 거울이지, 「당신의 사회적 기술은 부족합니다」 같은 단정의 결이 아닙니다. 결의 결을 들여다보는 출발점으로 사용하되, 결의 점수에 자신을 가두지 않는 자세가 정직합니다. 자가진단의 결이 「자기 결을 다시 부르는 결」로 작동할 때 도구의 본래 결과 가깝게 자리잡습니다. 일상에 큰 어려움이 지속된다면, 자가진단의 결로 단정하기보다 정신건강 전문가의 결을 만나는 자세가 적절합니다.
마무리
사회적 기술은 「타고난 성격의 결」도 아니고, 「누구나 같은 속도로 익힐 수 있는 결」도 아닙니다. 그 사이의 자리에 있는, 「의도적인 연습으로 다듬어지는 결」입니다. 듣는 결, 차례를 맞추는 결, 결을 읽는 결, 자기 결을 부드럽게 부르는 결, 어색함을 다듬는 결 — 이 작은 결들은 한 호흡의 자세로 부를 수 있는 자리에 있습니다.
자기 결의 본래 풍경을 부정하지 않으면서, 한 결씩 부드럽게 다듬어 가는 자세가 사회적 기술의 결을 가장 정직하게 부르는 자리입니다. 외향적인 사람으로 변할 필요도 없고, 모두에게 사랑받는 결이 될 필요도 없습니다. 자기 결과 상대 결 사이를 부드럽게 잇는 결을 한 결씩 부르는 자세가 결국 결의 풍경을 다르게 만듭니다.
「나는 원래 그래」라는 결을 「나는 아직 그 결을 익히지 않았다」로 한 번 다시 부르는 자세, 그 한 호흡이 결국 사회적 기술의 결을 익힐 수 있는 자리에 우리를 데려다 놓습니다. 일상의 작은 결 한 결을 오늘 한 번 부르는 자세에서 출발하면 좋겠습니다.
Brambin EQ는 자기성찰과 엔터테인먼트를 위한 도구입니다. 의학적·심리학적·진단 도구가 아니며, 전문가의 조언을 대체하지 않습니다.